[판결] 친구에게 빌려준 계좌로 사기 “예견 못하면 공동책임 없다”
법률신문 홍윤지 기자
2024-09-01 09:10
타인에게 장기간 사용을 허락한 계좌가 투자 사기 등 불법 행위에 쓰일 수 있다는 점을 미리 알 수 없었다면 계좌 주인에게는 불법행위에 대한 공동 책임이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.
대법원 민사2부(주심 권영준 대법관)는 1일 A 씨가 B 씨를 상대로 낸 대여금 소송(2024다238316)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.
B 씨는 2011년부터 고등학교 동창 C 씨에게 자신 명의 통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카드나 비밀번호를 양도했다. 정상적으로 금융거래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C 씨는 B 씨의 계좌를 위험성이 높은 해외선물 투자에 이용했다. 그러던 중 2020년 7월부터 1년간 A 씨는 B 씨 명의의 주식 계좌에 1억2000만 원을 송금했는데, 이 주식 계좌도 C 씨의 투자에 사용됐다. C 씨는 투자금 반환을 요구하는 A 씨에게 B 씨를 사칭해 반환 약정까지 해줬다.
C 씨는 투자 사기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됐고, A 씨는 B 씨에게 자신이 송금한 1억2000만 원에 대해 주위적 청구로 대여금 청구 소송을, 예비적 청구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.
1심과 항소심은 “B 씨는 C 씨에게 자신 명의 계좌의 접근매체를 양도할 경우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었으므로 C 씨의 사기행위에 대한 공동불법행위자로서 A 씨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”며 A 씨에게 60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.
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. 여러 정황상 B 씨로서는 C 씨에게 빌려준 계좌가 투자 사기와 같은 불법행위에 사용될 거란 점을 예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B 씨에게 C 씨의 불법행위에 대한 공동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.
재판부는 “현재 C 씨는 소재 불명으로 사기 혐의에 대한 수사가 중지돼 C 씨가 A 씨를 기망했는지 여부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”며 “B 씨가 C 씨에게 장기간 계좌 사용을 허락해 그 계좌로 주식선물 투자가 이뤄진 것이고 B 씨가 C 씨의 계좌 이용현황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는 B 씨가 C 씨의 불법행위에 도움을 주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”고 밝혔다.
이어 “B 씨와 C 씨는 30년 이상 알고 지낸 동창 관계이고, B 씨가 C 씨에게 이 사건 계좌 외에도 여러 계좌를 사용하도록 허락했는데, 이와 관련해 대가를 받았다고 볼 자료가 없고 2021년 말까지는 C 씨의 계좌 사용 과정에서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”고 설명했다.